






잊어버린 낭만에 대하여
-내 낭만은 항상 너희였다.
지구에 첫 생명이 탄생한 이래로 계속해서 태양은 뜨고 지는 것을 반복했고, 그에 따라 하늘이 푸르렀다 검었다를 반복했다. 이것은 수천 년간 바뀌지 않았고, 수천 년간 바뀌지 않을 만고불변의 진리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진리가 그러하듯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것이 있기 마련이었다. 눈앞에 이 건물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 좀 천천히 가자. 너야 요정이라 몸이 더 가벼울지 몰라도 난 아니란 말이야."
" 나도 똑같이 힘들어요. 지푸라기도 아니면서 엄살은…. 어차피 아저씨나 나나 이젠 똑같잖아요.
분명 이곳은 초목만 무성하던 곳이었다. 흠 하나 없다 못해 언뜻 보면 무정해 보이기까지 한 저 두터운 철문 대신에 맑은 물이 퐁퐁 솟는 작은 개울이 하나 있었고, 그 주위로 작고 여린 동물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목을 축이기도, 모두 따스한 햇볕 아래 단잠을 자기도 하였었다. 그들 중 몇몇은 그 조막만 한 머리를 들이밀며 쓰다듬을 종용하기도 하였지.
" 여기가 이렇게 멀었나. 우리 분명 예전에는 5분이면 가지 않았어?"
" 그때랑 지금이랑 같아요? 우리도 이제 나이 들었잖아요."
" 그러니까 제가 그랬죠. 미리미리 건강 좀 챙기시라고. 그때는 맨날 귀찮다고 그러다니.
봐봐요. 결국 지금 이렇잖아요."
그 귀엽고도 연약한 부름에 응해 손을 들어 보드라운 털 사이사이를 토닥이다 보면 장난기 많은 어린
것들이 슬쩍 제 기다랗고 하얀 귀를 슬쩍슬쩍 물었다. 그럴 때면 부러 엄한 표정을 지으며 콧잔등을 가볍게 쳤었다. 그러면 조막만 한 얼굴로 성질을 부리는데 그것이 참 귀여웠다. 머리 위로 내려앉은 따스한 햇살은 다정했고, 어린 것들의 장난은 마음을 간지럽혔다. 그렇게 한참을 있노라면 절로 마음이 따스해졌다.
" 아- 알았어. 잔소리 그만. 그리고 나이가 아니라 시대가 변한 거지."
" 어이구. 진짜 말이라도 못 하면…."
" 근데 여기로 가는 거 맞아? 여기 아닌 거 같은데?"
" 여기 맞다니까요? 우리 맨날 날아서 왔으니까 좀 낯설어 보이는 거예요.
" 이젠 진짜 조금만 더 가면 돼요. “
" 그 말 아까도 한 거 같은데…."
그렇지만 그런 찬란한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무로 된 작은 움집이 지어지더니 그 움집들이 모이더니 작은 건물이 들어서고, 어느새 거대하고 단단한 건물이 들어서 지금의 저 단단하고 무정한 건물이 군락을 이루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더 이상 손안에 자그마한 온기를 느끼지 못하더라도 그만큼의 많은 인연과 닿을 수 있었으므로.
" 자 봐요. 저기 있잖아."
" 오 진짜네…. 근데 물 없어? 너무 힘들어."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것도 다 끝이었다. 세상에 더 이상의 낭만이 존재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기적, 마법, 요정, 마법사 등 세상의 허구적인 것들은 본디 인간의 욕망 위에 서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아직 주체적으로 소망을 해결할 수 없었을 때 성행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인간들은 끝없는 변화를 추구하는 족속들이었기에 차근차근 그들의 소망을 이루어내, 마침내 인류의 오랜 소원이었던 죽음마저 정복하기에 이르렀다.
" 잠시만요. 좀만 기다려봐요."
" 알았어, 천천히 해."
꿈 토끼는 가방을 뒤적거리다 희미해져 가는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창백한 달빛마저 투과하는
흐릿한 손이 토끼의 끝을 예고하고 있었다. 역시 삶에 있어 절대 불변은 없는 것인지, 사라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저 자신이 우스웠다.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소멸이었다. 정말 다들 어떻게 죽음을 목전에 두고 그리 무덤덤할 수 있었던 것인지.
" 아 근데 우리도 이런 날이 오네."
" 그러게요…. 누가 알았겠어요."
" 아니야 공룡은 알았을 수도 있어."
" 왜요? 지존 드래곤이어서? "
" 어 그래 지존 드래곤이어서 ~ "
토끼는 마법사와 실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투박하고 단단한 비석을 쓰다듬었다. 분명 손안에 느껴지는
단단함은 저기 하늘을 높게 가로지르는 건물의 단단함과 같을 터인데 왜 이리 다정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 빨리 아저씨도 한 번 만져줘요. 이것도 이제 마지막인데."
" 알았어. 물만 마시고 하려고 했어.”
꿍얼거리지만 착실하게 비석을 쓰다듬는 마법사를 보며 토끼는 찬찬히 미소 지었다. 다가오는 미지의
죽음은 여전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매는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혼자가 아니기에 괜찮았다. 하지만 우리마저 가게 되면 남겨질 걱정 많을 이웃 하나가 끝끝내 눈에 밟혔다.
" 다했으면 여기에 좀 누워요. 왜 이렇게 비틀거려. 내가 그러니까 좀 잘 챙겨 먹으라고 했잖아요."
" 아 알았어. 알았는데 그래도 매끼 당근은 너무하잖아. 난 토끼가 아니라구."
" 그러니까 건강이 안 좋아지죠. 당근은 눈에도 좋고, 피부에도 좋고 면역력 증진에도 좋은 슈퍼푸드라고요!"
" 아 진짜 라더도 아니구…."
" 이번에 라더 홍삼 사 왔던데…. 이거 말할 거야."
이제 남은 시간은 일주일. 이별을 준비하기에 넘침도 모자람도 없는 딱 적당한 시간이었다.
***
언제였나. 드래곤을 열차에 태운 날이었나 뱀파이어를 열차에 태운 날이었나. 누구였는지 명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유난히 반짝였던 날이었음은 분명했다. 검은색 도화지 위에 휘황찬란하게 걸린 달 하나와 별 부스러기. 그 빛을 받아 발산하는 크고 비정한 건물들, 길게 뻗은 낭창한 나뭇가지, 길가의 굴러다니는 작은 돌멩이. 모두 마침내 다가오고 야만 이별을 슬퍼하듯 발광했다.
" 저승행 열차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 가서 너무 행패 부리지 말고, 잠뜰이한테 우리 안부 전해주고!"
" 알겠으니까. 이제 들어가. 잘 지내고."
잠뜰이의 죽음처럼 그의 죽음은 꽤 오랫동안 이웃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안식과 가장 거리가 먼 자였기에 더욱 그랬다. 이웃 중 가장 긍정적이며 친절한 요정도 한동안 방 밖을 나서지 못했으며, 단단하고 다정함의 결정체인 마법사도 슬픔에 젖어 시들 거리며 축 늘어졌었다. 그렇기에 언데드는 처음으로 오롯이 이별을 온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도피도 기피도 회피도 어느 것 하나 허용하지 않는 그것은 매 순간
외로움으로 괴로움으로 언데드를 조여왔다.
" 아…. 보고 싶어."
죽음을 처음 직면한 그 날 이후 언데드는 죽여왔던, 아니 죽었다고 생각했던 실로 솔직하고 생경한 감정들과
마주해야 했다. 그것들은 순식간에 살을 퉁퉁 불린 만큼 차갑기도 따뜻하기도 해, 하루에도 몇 번 천국과 지옥 그 사이를 오가야 했다. 마치 사춘기 소년처럼.
그러나 애석하게도 언데드는 몇백 년을 살아온 성인이였고 어엿한 지능을 가진 생물이었으며 직장을
가진 직장인이었다. 그렇기에 마냥 사춘기 소년처럼 극과 극을 달리는 감정에 휘둘릴 수 없었다. 그건
언데드의 남겨진 이들의 말로가 다 그러하듯 남겨진 이웃들은 그들의 안위를 몹시 민감해졌으니 더더욱
그럴 수 없었다. 참으로 겁쟁이들다운 행보였다.
" 요즘 라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 확실히 예전보단 솔직해졌긴 하지…. 그래도 이게 더 보기 좋지 않아?"
" 그렇긴 하지만. 걱정된단 말이에요. ”
언데드가 생경함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에 애원한 날은 그가 재로 돌아간 지 딱 1년이 되던 날이었다.
그의 죽음을 기념해 이웃들끼리 조촐하게 자리를 만든 날이기도 하였다. 분명 나쁜 것 없는 하루였다.
너무 오랜만에 써 절차도 잊은 휴가를 쓰고 느지막하게 일어나 온몸의 나른함을 느끼는 그런 평범한 하루. 그러나 언데드의 몸은 단 한 순간의 쉼도 허가하지 않는 무지막지한 노동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도무지
쉬는 법을 몰랐다.
늘어져 버린 몸과 시간을 틈타 상념과 그 감정들이 내려앉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눈을 돌리는 그 모든 곳마다 그가 있었고 그들이 있었으며 우리가 있었다. 그가 살아온 시간만큼 쌓여버린 그들과의 추억은 광하시의 어디에나 녹아있기에 언데드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아니 멈추지 못했다. 그는 그들이 여전히 그립고 간절했고 필요했기에 그러지 못했다.
' 잠뜰이를 처음 봤을 땐 공룡이 너무 당연하게 잠뜰이 집에서 나오길래 부부인 줄 알았는데…. 지금
그 둘은 뭐하려나.?'
' 얼굴은 허옇고 눈 밑은 다크써클로 범벅이 되어 있고 입술은 시뻘겋고, 말투도 이상한 주제에 사람이라 우기던 게 얼마나 웃겼는데.'
' 잠뜰이 개는 호기심 좀 줄여야 해. 수상하다고 다짜고짜 주택 침입이라니…. 진짜 비명횡사하기 딱
좋다니까.'
진짜 보고 싶다.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잠뜰이야 워낙 가만히 있지를 못했으니 여행이라도 다니고 있지 않을까? 공룡이랑 각별은 그 옆에 같이 끌려다닐 것 같고. 끌려다니는 그 와중에 공룡은 사고 칠 것 같아. 또 뭐 태워 먹지 않았을까? 각별은 또 피곤하다고 엎어져 있을 것 같아. 입에 블러드 쥬시 물면서.
그 다크써클은 좀 나아졌으려나? 밥은 누가 하려나? 잠뜰이는…. 공룡이 할 것 같은데. 그래도 그 중에선 꽤 하니까? 뭘 먹으려나? 요정이 없으니 전부 채소는 입에도 안 대려고 할 텐데….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은 머리 꼭대기에 있던 해가 저물며 날이 시커먼 어둠으로 물들 때까지 계속되었다. 맞춰둔 시끄러운 알람음 덕분에 가까스로 빠져나온 상념은 긴 여운을 남겼다. 그 여운은 그리움, 외로움과 같은 회색빛 감정을 집어삼키며 덩치를 불리며 언제든 언데드를 집어삼킬 준비를 하였다.
" 왜 이렇게 늦었어. 고기 다 익었는데."
" 오늘 휴가도 낸 녀석이 늦어진다는 게 말이 되나?"
" 당근 좀 사 오느라. 저번에 맛있다고 하던 데서 사 왔어. 엄청 싱싱하더라."
온갖 상념을 뒤로한 채 들어선 요정의 집은 따뜻한 온기가 가득 차 있었다.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들과는 다르게. 장난스레 날아오는 핀잔을 가볍게 받아치며 들어선 자리엔 전과 달리 작아진 마법사와 투명해진 요정이 존재했다. 그들은 여전히 따스하고 살가웠지만 연약해졌으며 위태로워졌다.
" 왜 이렇게 말랐어. 그러게, 내가 좀 잘 챙겨 먹으라고 했잖아."
" 아 잘 먹고 있어. 그거 유난이야. 애가 예전엔 안 그랬는데. 나이가 드니까 점점 이러네."
" 또 시작이다. 니가 안 그래도 재 잘 먹어. 당근을 하루에 몇 상자나 먹는데. 그나저나…."
집 안의 훈훈하고 온온하던 온기로 데워졌던 마음 한구석이 피슉 소리를 내며 차갑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
웃는 소리 하며 얄썅하게 말라버린 손목을 가려버리는 요정도, 그에 동조하며 주제를 돌리는 마법사도
모두 맘에 들지 않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깨져버릴 이 평화가 가라앉은 심기에 불을 질렀다. 마음 한구석에서 울컥 뜨거운 것이 솟구쳤다.
" 개도 그랬어! 개도 죽기 전에 그랬다고. 다들 기억 안 나? 제발 좀 건강 챙겨. 왜 볼 때마다 점점 약해져 가?
난 생각도 안 하지? 난 이제 당신들밖에 없어!"
" 진정하자. 너 지금 너무 흥분했어."
" 아니. 나 지금 엄청 이성적이야. 제발 건강 관리 좀 해. 하루라도 더 내 옆에 있으란 말이야. 다들 알잖아? 낭만은 죽었어. 다들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고!"
아, 결국 또 이래 버린다. 터져 버린 불안과 걱정이 쌓여 오히려 그들을 공격한다. 분명 전하고 싶었던 것은 그게 아닐 터인데. 싸늘한 정적만이 자리에 맴돌았다. 정적이 길어질수록 커져가는 혐오와 회색빛 여운은 결국 언데드를 삼켜 이성을 마비시켰다.
" 미안해. 오늘은 먼저 일어날게."
언데드는 그를 붙잡는 소리를 뿌리치며 자리를 박찼다. 넘쳐 흘러버린 자기혐오를 도무지 견딜 재간이 없었다. 그 길로 언데드는 죽음을 향해 떠났으며, 죽음을 애원했다. 더는 외로워하고 싶지 않지 않음을
소망했기 때문이었다.
" 이만하면 되지 않았습니까? 제발 제게 안식을 허락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 너무 힘이 듭니다."
" 하루하루 먼저 떠나간 이들의 얼굴이 아른거립니다."
" 그러니 제발 자비를 베풀어 제게 안식을 허락해주십시오."
그러나 비정하게도 죽음은 그에게 달콤한 안식을 선사하지 않았다.
"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단다. 나는 아직 너에게 안식을 허락하지 않겠어."
대신 짤막한 휴가라는 배려 아닌 배려를 베풀었지. 비어버린 시간만큼이나 늘어날 상념의 무게로 그가
휘청거릴 것을 알면서도.
" 머리라도 좀 식히고 오렴. 이래 봬도 난 널 꽤 아끼니까.
고저 없는 목소리로 다정하게 떨어지는 그 목소리를 끝으로 언데드는 그의 삶 처음으로 엉엉 울었다.
다정하게 내려앉는 그 목소리가 가증스러워서, 끝끝내 허락되지 않은 안식이 원망스러워서. 죽어도 죽지 않는 제 몸뚱이를 원망하면서, 너무나 빨리 스러지고야 마는 제 주변의 인연에 애달파 하면서
죽음에 애걸한 이후 텅 비어버린 시간만큼이나 황량해진 언데드는 단 한 번도 집밖에 나서지 않았다. 만약 죽음이 이를 보았다면 혀를 끌끌 차며 당장이라도 집 밖에 내쫓았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죽음이란 참 공사다망한 존재였기에 그러지 못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 언데드는 집 안에 박힐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날 이후 그를 걱정한
친절한 이웃들이 밤낮없이 그의 방문을 두드렸지만 겨우 그것만으론 언데드를 꺼낼 수 없었다.
" 라더야! 라더야! 문 좀 열어봐! 너 거기 있는 거 다 알거든? 문 좀 열어! 열라니까?"
" 라더야? 라더야! 우리 상어야 문 좀 열어줘라."
" 너 자꾸 그러면 꿈속에 쳐들어간다?! "
" 그래 우리 얼굴 좀 보자."
죽음조차 초월한 존재. 그 무서운 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닌지라 까짓것 잠 좀 자지 않는다고 어떻게
되지 않았다.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그에게 다가설 수 있었던 요정마저 지독한 언데드의 성미에 가로막히자 그들은 그저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낮이고 밤이고 문을 두드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고약한 무력감이 그들을 감쌌다.
지금에서야 그리 대단할 것도 신기한 것도 없다지만 나름대로 명망 있는 존재들을 단순에 무력화시킨
그 장본인은 푹신한 침대에 누워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푹신한 이불에 둘러싸여 잠을 자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밀려오는 상념과 꼬리에 꼬리를 문 무수한 질문과 차마 내뱉지 못한 원망에 둘러싸여 발버둥 치는 중이었다.
발버둥 치면 칠수록 점점 더 아래로 내려앉는 자신을 눈치채지 못한 채.
많은 이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차갑게 식은 몸으로 만난 이들뿐 아니라 아직 따뜻한 심장을 가지고
뜨거운 피를 가졌을 때의 인연들도 언데드를 맴돌았다. 그들은 늘 언데드를 현혹했다. 제멋대로 다가와 따뜻한 것을 양껏 안겨주고는 멋대로 스러졌다. 항상 남겨질 자신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스러저 자신을 버려두고 떠났다. 그때마다 극심한 외로움과 추위가 언데드를 덮쳤다. 분명 그런 것 따위 느끼지 못해야
정상일 터인데…. 그러나 이 괴팍한 것은 언데드가 가진 의문을 해소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 왜 항상 나만 두고 떠나는 거야?"
" 제발 나도 데려가 줘."
애원하고 애걸하고 원망하고 소리치는 과정을 반복하며 언데드는 서서히 다가오는 절망에 익숙해졌으며
종내엔 그 끝조차 보이지 않는 암흑에 몸을 맡기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언데드는 눈을 감았다.




" 내 낭만은 항상 너희였다. "


W. 고운 | I. 공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