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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서늘한 바람, 몽롱한 정신, 흐린 시야- 기억의 첫 장이다. 눈을 천천히 여러 번 감았다 뜨자 선명해지는 시야와 잊혀졌던 고통이 되살아났다. 팔, 다리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깊게 뚫린 듯한 검은 구멍이 보인다.

저곳에서 떨어진 걸까? 그제야 자신이 누워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노란색 토끼리본이 인상적인 머리끈이 바닥을 굴렀다. 풀어헤쳐진 머리를 질끈 올려 묶었다. 저 위로 다시 올라가는 것은 무리일 테니 다른 길을 찾아야했다. 주위를 조금 둘러보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받침대가 보였다. 그리고 그 위, 덩그러니 올려져 있는 사탕 3개. 하나를 입에 넣었다. 데굴데굴 사탕이 굴러간 자리는

새콤한 레몬맛이 느껴졌다. 어쩐지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다. 나를 깨웠던 서늘한 바람이 몸을 스쳐지나갔다. 바람이 분다는 건 밖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 바람을 손가락에 감으며 따라가자 출구가 보였다.

 

 

 

 

 

 

숲속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누군가 인위적으로 묶은 듯한 붉은 실을 발견했기에 그것을 따라갔다. 손가락에 감았던 바람처럼 실을 감으며 나아가 하나의 실타래가 만들어질 때쯤 분수를 발견했다. 더 이상 물이 흘러나오지 않으며 관리가 되지 않아 금이 가고 이끼가 끼어버린 분수를 발견했다. 나무의 푸른빛이 무성한 것과 대조되는 붉은 인영을 보았다.

이곳에 사는 사람일까? 혹시 내가 왔던 곳을 되돌아 갈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천천히 다가갔다. 분수대에 걸터앉아 다리를 앞뒤로 흔드는 작은 체구를 가진,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아이는 내가 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는 환하게 웃었다.

 

“ 신데렐라! 보고 싶었어. 왜 이제야 온 거야? 너만을 기다렸는데.. 네가 찾아오기 쉽도록 나를 닮은

붉은 실을 나무에 걸어두고 - ”

 

저를 신데렐라라고 부르는 아이는 마치 자신이 이곳에 반드시 올 것이라 확신을 갖고 있었다. 쉴 틈 없이 뱉어져 나오는 말은 저와 전혀 관련 없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 말들을 끊어내며 용건만 간단히 그에게 건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 너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레스와 물처럼 투명한 유리구두를 줄게 모두의 주목을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호박마차에 올라타고 무도회장을 가서 왕자님과 결혼하는 거야. ”

 

저는 단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한 채 마치 자신의 속에 살고 있는 듯한 아이에게서 한 걸음, 두 걸음 멀어졌다.

 

“ -그러니까, 내게 사탕을 줘! 사탕을 주지 않으면 장난칠 거야! 너도 다른 신데렐라처럼 저 호박으로

만들어 버릴 거야! ”

 

그 외침에 깜짝 놀라 대뜸 사탕하나를 던지고는 더욱 깊은 숲속으로 달려갔다. 원하는 것을 얻어 만족했는지

따라오지 않았다. 한참 숲을 내달리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길을 발견했다.

 

 

 

 

 

 

그 위엔 새하얀 조약돌이 올라와 있었고 저는 그것을 하나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어딘가 쓸 일이 있겠지.

조약돌을 따라 길을 걷자 어디선가 달콤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길 끝에는 집 한 채가 있었는데

특이한 점은 아주 바삭하면서도 단단한 비스킷 벽과 입에 넣으면 사르를 녹을 듯한 초코릿 지붕은

알록달록하고 여러 가지 사탕들로 장식한 과자로 만들어진 집이라는 것이다. 그때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나왔다.

 

“ 그레텔 왔니? 다행이다 네가 길을 잘못 들어 잃어버린 건 아닌가 했어. 네가 찾아올 수 있게 조약돌을 두었는데 도움이 되었나보구나. ”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은 저하나 뿐이었기에 그레텔이 자신을 부르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저는 그레텔이 아니었기에 그저 돌아갈 길만을 물어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 그럼 이제 사탕을 줄래? 사탕을 주지 않으면 장난칠 거야! 너도 다른 그레텔처럼 뜨겁게 끓어오르는 설탕물에 던져버릴 거야! ”

 

벌써 두 번째 겪는 상황에 저는 사탕을 건네주며 사탕을 주지 않으면 장난을 칠 것이라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이런 식으로 반격을 받을 줄 몰랐는지 조금 벙한 표정을 지었다가 냉큼 과자집에 장식된

막대 사탕을 뜯어 건네주며 웃었다. 혹시나 다시 뺏어갈지 몰라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얼마나 걸었을까 훨씬 더 깊게 숲속으로 들어온 저는 조금 후회했다. 근처에 무엇이 있는지 물어볼 것을. 강가라도 찾는다면 근처에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니까. 이러나저러나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다.

이 길에 하얀 조약돌도 없어 다시 찾아가는 건 무리이기도 하고 다시 찾아갔다가 설탕물에 빠지면

곤란했다. 조금 지친 발걸음을 옮기자 발에 닿은 땅이 무너짐과 동시에 제 몸도 디딜 곳이 없어 훅 꺼져버렸다. 눈을 질끈 감고는 땅에 부딪히기를 기다리자.

 

 

 

 

풍덩-

 

간질거리는 물살에 정신이 들었다. 벌써 두 번째 추락인 것 같은데 점멸하는 시야를 바로 잡고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이곳은 물속, 그것도 아주 깊은 바닷속이었다. 다시 헤엄쳐 올라갈 수는 없다. 어차피

올라간다한들 깊은 구덩이일텐데 다른 출구를 찾아야만했다. 바닷속 깊은 곳이라지만 어떤 물고기도

해초나 산호 따위도 보이지 않았다. 가까운 곳에 동굴 하나가 보였다. 별다른 잠금장치가 보이지 않았기에 문은 세월을 알려주듯 뻑뻑하게 열렸다. 이상했다. 분명 물속인데 어떻게 촛불이 꺼지지 않는 거지?

그때 저 안쪽 깊은 어둠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 허락도 없이 이곳에 들어온 인어공주가 너야? 그 형편없는 꼬리로 용케 여기가지 왔군 그래. ”

 

그의 전체적인 외형은 검은 문어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저는 그에게 이곳에 허락 없이 들어온 것을 사과하며 바닷속을 나가 지상으로 이어진 곳을 알게 되면 바로 나가겠다고 말했다.

 

“ 나가는 길을 알려주는 건 어렵지 않지만 이곳에서 나가려면 대가가 필요해. 사탕을 줘. 사탕을 주지 않으면 장난칠 거야. 네 목소리를 빼앗아 영원히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들어 버릴 거야. ”

 

저가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 물에 녹지 않는 사탕이어야 해. 난 오래오래 그것을 보고 싶거든. ”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차에 주머니에 굴러다니던 조약돌을 기억해냈다. 저가 맨 처음 먹었던 사탕봉지에 조약돌을 넣어 사탕처럼 돌돌 말았다. 그럴듯한 모습에 녹지 않는 사탕이라며 그에게 건넸다. 그는 눈동자를 빛내더니 냉큼 그것을 채가고는 자신이 걸어 나온 방을 가리켰다.

 

“ 저쪽으로 가면 문이 나오는데 가고 싶은 곳을 생각하며 열어. 그럼 이제 가봐. ”

 

더 이상 내게 볼일이 없다는 듯 축객령이 떨어졌다. 안쪽에는 군데군데 이끼가 끼어있는, 원래라면

보라색이었을 문이 있었다. 저는 제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길 원했기에 자신의 집을 생각하며

문을 열었고 결과는..

 

 

 

 

 

 

 

 

 

하늘이 따라주지 않는지 여전히 숲속이다. 저 깊은 바다에서 빠져나온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할까?

또 숲을 걸었다. 이번엔 나뭇가지에 걸린 리본도 바닥에 표시해놓은 조약돌도 없이 계속 걸었다.

숲에는 그 흔한 동물들도 없는지 제가 풀을 발거나 수풀을 헤치는 소리 외에는 어떤 것도 들리지 않았다.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는 숲. .. 정말 그럴까? 언제부턴가 집요하게 따라붙는 시선과 나뭇잎을 가르는 소리.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듯 신중을 가하는 기다림. 무언가 있다. 이곳을 고요하게 만든 장본인? 아니면... 생각을 채 끝마치기 전에 하늘에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앞으로 내려왔다. 아마도 나무위에 있었겠지.

 

“ 빨간 망토야. 또 할머니를 뵈러가는 길이니? ”

 

이젠 자신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익숙해졌기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응시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도 어차피 저들은 자신의 말을 이어갈 테니까.

 

“ 할머니는 참 좋은 손녀를 두셨구나. 하지만 그 손녀가 사라진다면 매우 슬퍼하시겠지? ”

 

번뜩거리는 눈빛과 입술사이로 삐져나온 뾰족한 이빨이 눈에 띄었다.

 

“ 내게 사탕을 줘. 사탕을 주지 않으면 장난칠 거야! 너도 다른 빨간 망토처럼 잘근잘근 씹어 먹을 거야! ”

 

저는 마지막 사탕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그것을 얼른 낚아채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입에 넣었다.

저는 그에게 돌아가는 길을 물었다. 솔직히 별로 기대는 안 했지만, 그는 사탕의 막대를 잡고 이리저리 굴리다 나를 보며 말했다.

 

“ 얼마 남지 않았어. 이번의 너는 해답을 찾았니? ”

 

동문서답을 하고는 숲의 한 방향을 손으로 가리켰다. 마치 저곳으로 가라는 것처럼. 아주 조금 쉬었다고 생각되었기에 저는 늑대를 뒤로하고 그가 알려준 방향으로 또 하염없이 걸었다.

 

 

 

 

 

 

 

점점 수풀이 빽빽해져서 힘겹게 옆으로 넘기고 앞으로 나아가자 마침내 커다란 나무가 나왔다.

아주 오래되어 기둥이 두껍고 그 속을 파내어 집으로 만들었는지 창문 몇 개가 보였다. 그 주위를

날아다니는 반딧불이가 나를 발견하고는 금세 날아왔다. 아주 밝은 빛 속에서 사람의 형체가 보인다.

 

“ 피터팬! 이번엔 조금 늦었구나. 자- 그래서 이번엔 답을 찾아왔겠지? 하늘에서 얘기하자. ”

 

빛은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반짝이는 가루를 뿌리더니 이내 저의 몸은 떠올라 점점 하늘로 올라갔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이곳은 거대한 하나의 섬이었다. 빛은 제게 재촉하든 말했다.

 

“ 어서 너의 답을 말해봐, 피터팬. 그렇지 않으면 장난칠 거야. 다시 널 아주 높은 하늘에서 떨어트릴 거야! ”

 

저는 무엇에 대한 대답인지를 물었다.

 

“ 너는 이미 답을 알아. 이제 말하기만 하면 돼. ”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지금껏 사탕을 주지 않으면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는 이들에게서 도망치기 바빴는데..

내가 한참이 지나도 대답을 하지 않자 인내심이 다했는지 조금 전보다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 이번엔 침묵인가.. 아직도 모르겠다면 한 번 더 갔다 오도록 해. ”

 

이내 내 몸은 더 높이 구름에 닿을 듯하게 올라갔더니 잠시 멈추었다가 저를 끌어당기는 힘에 곧바로

추락했다. 빛의 얄미운 웃음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장난에 당했다. 이번에도 실패했나. .. 이번에도? 나는 이번이 처음이지 않았던가. 어떻게 이 상황을 알고 있지? 그때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러니까, 이번 일들이 아닌 그 전에 있었던 일들까지도 나는 이미 여러 번 시도했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다.

 

 

 

 

“ Trick or Treat. ”

 

 

 

 

일그러진 표정이 퍽 마음에 들었다.

 

 

 

 

 

 

붕 뜬 정신이 퍼뜩 들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니 분장을 마친 친구들이 있었다. 팅커벨과 늑대, 문어마녀, 헨젤 그리고 요정까지. 아무래도 돌아다니며 말할 대사를 생각하다가 깜빡 잠들었나보다.

 

“ 무슨 잠을 그렇게 험하게 자냐? ”

“ 아.. 그냥, 조금. ”

“ 대사는 생각해봤어? 너만 못 정했잖아. ”

“ 꿈속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받아왔어. ”

“ 그래? 그럼 첫 번째 집은 네가 하는 거다? ”

 

 

띵동 -

경쾌한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안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문이 열리고 사람이 나왔다.

 

“ Trick or Treat! 사탕을 주지 않으면 당신의 목을 베어버릴 거예요! ”

 

 

HAPPY HALLOW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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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ick or Trea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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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메이데이 | I. 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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