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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이 아스라이 빛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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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간새쵸 | I. 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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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라면 한적했을 어느 가을날, 아침 신문 1면에 커다랗게 쓰인 헤드라인에 다키아 전국이 들썩였다.

 

호스티에 성, 붕괴하다!

 

스스로 일어나 나라의 폐단을 쌓아올리던 귀족들을 끌어내리고 공화국을 세웠다는 자부심을 가진

국민들에게 호스티에 성은 그러한 행위에 충분한 명분이 있었음을 의미했다. 근데 그런 상징이 붕괴했다?

다키아 국민들은 자신들의 자존심이 잠든 새 무너졌다는 것에 분노했다.

이는 다키아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호스티에 성 건은 단순히 리조트 하나가 지어지는 것 정도의 의미를

가진 게 아니었다. 작게는 관광산업의 추가로 한 지역의 부흥을 꾀하는 것이었고, 크게는 다키아와 한국,

두 나라의 결속을 더 단단히 하는 목적이 있었다.

이를 위해 유능함으로 국민들에게 큰 지지를 받는 이온 상원의원이 직접 나섰고, 명성 리조트의 각별 CEO가

손수 홍보대사를 골라 안내했다. 그런 와중에 이온 상원의원이 실종된 것으로 모자라 호스티에 성이 무너지다니!

자존심 이상의 문제가 되어버린 사태에 책임자를 찾아 보상을 얻어내기 위해 다키아 경찰들은 눈에 불을 키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다키아 정부에게 다행이도, 용의자는 쉽게 잡혔다. 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당일 성에 초대받은 자들 중

셋이 성이 아닌 곳에서 대뜸 나타났던 것이다. 마침 그들은 성의 리조트화를 책임지던 각별 CEO와 같은

한국 출신이었고, 꽤 많은 부와 영예를 가지고 있었다. 이미 그들 외에는 물증으로도 심증으로도 용의자는

없었으니 호스티에 붕괴 사건은 그 셋과 그들의 조국이 보상하는 것으로 막을 내릴 것이다. 다키아 정부의

시나리오는 그러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용의자들은 무척 유능한 기록자였다.

라더의 사진기는 그가 성 안에서 보았던 모든 것들을 찍어내었고 잠뜰의 음향 카메라는 전원이 켜져 있는 동안 모든 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었으며, 덕개의 배터리 간당간당한 스마트폰은 둘에게 부족했던 진정성을 부여했다.

 

그 모든 것을 확인한 다키아의 경찰 간부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호스티에 성 건의 주역 둘이 처참하게

살해당한 것은 물론이오, 알음알음 돌던 호스티에 가문의 역사가 정말 거짓 교수에 의해 날조된 것이며

범인은 쉬라이크… 아니, 머셀가의 후손이었고 생존자 중엔 호스티에가의 후손이 있다라.

당연하지만 다키아 정부는 이를 최대한 은폐하고, 축소하려고 하였다. 한국은 철저한 피해자인데다가

엘비아의 쉬라이크 가문에 책임을 물기엔 가문의 세가 줄어든지 오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낱낱이

밝혀졌다간 그 누구에게도 보상받지 못하고 저들이 직접 모든 대처를 맡아야할 판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용의자들은 꽤 유능한 메신저이기도 했다.

시작은 덕개가 의도치 않게 올린 SNS 게시물이었다. 경찰들에게 발견되기 한참 전, 공용 와이파이가 있는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습관적으로 티티터를 확인한 덕개는 무척 어처구니없는 것을 발견했다.

"어, 뭐야. 계정 정지?"

사유는 다수의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게시물 등록. 성에 방해 장치라도 있었는지 그 끔찍한 시간 내내

로딩만 된 채 올라가지 않던 게시물들이 우물에서 나오자마자 일괄 게시된 것이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이성을 붙잡기 위한 발악으로 올린 혼잣말들과 끔찍하고도 두려운 광경들이 노골적으로 살아있는 이미지와

영상들. 당연하게도 순식간에 온갖 신고가 사측으로 넘어갔고, 이를 확인한 티티터는 당연하게도 그의 계정을 정지시킨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그새 많은 사람들이 사태를 눈치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많은 캡쳐본들이 정보의

바다를 건너 퍼져나갔고, 수많은 익명의 이목 아래 다키아 정부는 뭘 시도하기도 전에 그들을 한국 대사관으로 보내주어야 했다. 여담으로, 증거로 제출되었던 스마트폰 대신 즉석으로 최신 스마트폰을 구매한 덕개는

새로 만든 SNS 계정으로 팔로워들의 응원 고맙다며 영상을 찍다가 대사관 직원에게 제지당했다.

보안상의 이유로 사전 허가 없이 대사관 내에서의 촬영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럼 대사관에서 해도 되는 일과 안 되는 일로 컨텐츠 만들어도 될까요?

다음은 업계에서 거장으로 불리는 공포 영화감독 잠뜰. 덕개가 불특정 다수에게의 영향력이 뛰어나다면,

업무상의 이유로 많은 자본가들과 전문가들과 접해본 그녀는 권력자들에게 무엇이 중요하며, 또 무엇을

해야 특정 지식인들을 자극할 수 있는지를 잘 알았다.

"라더씨, 한 가지 허락받고 싶은 게 있는데요."

그 날 저녁부터 대사관 앞의 인파가 두 배가 되었다. 느닷없이 나타나 나자로 세 글자만을 부르짖는 폐인들의

정체는 역사학자였다.

거상 나자로는 1900년대 초의 전설적인 인물로 명성이 높다. 동유럽의 보잘 것 없는 나라였던 다키아에서

나타나 도시 두어 개를 오가기만 하던 작은 상단을 짧은 시간 내에 서유럽부터 서아시아, 심지어는 남아프리카까지 지부를 둔 거대 기업으로 만들게 그였다. 그러니만큼 다키아의 가장 큰 자랑거리이며, 동시에 근대

역사학의 최중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인물의 몇 없는 의문점 중 하나가 그의 실부모와 황혼기의 불분명한 행적이었는데… '나자로라는 아들을 둔 도이나 호스티에의 후손'의 등장이라니, 역사학계가 뒤집히지 않으면 이상할 지경이리라. 라더의 허락을

받고 덕개를 통해 약간의 진실을 퍼뜨린 잠뜰은 이제 영원히 닫지 못하게 된 창문 밖을 바라보며 낄낄거렸다.

만약 생존자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일생의 목표를 눈앞에 둔 학자들이 나서서 도우리라.

그리고 마지막 생존자, 여행 에세이 작가 라더는 며칠째 카우치에 몸을 둥글게 말고 사색에 빠져있었다.

수많은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시간을 글로 써 내리던 그는 자신의 처지나 앞으로의 대처보다

고성이 가두고 있던 이야기에 신경 쓰고 있었다.

옛날 옛적, 어느 작은 나라에, 선한 사람들과 그들을 질투하는 악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선한 사람들을 너무나 질투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선한 사람들이 사실 나쁜 사람이라고 속여

선한 사람들의 집을 빼앗았습니다.

먼 훗날, 몇몇 사람들이 성에 모였습니다. 진실과 고집, 거짓과 탐욕이 춤추며 성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그러나 진실과, 선한 사람들의 마지막 후손이 이겼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모두 피 묻은 성 밑에 파묻혔습니다.

라더는 악하진 않지만 선한 사람도 아니었고, 행동력이 넘치진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봐온 세상을 사람들에게 조곤조곤 건네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제 선조들이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어린 어미가 무엇을 노래했는지를 기억하고, 백여 년 동안 단 한가지만을

굳게 믿고 지켜온 노신사의 최후를 목격했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그 무엇보다 유지를 이어받은 자로서

그는 이 허망한 비극에 마땅한 결을 이어 붙여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다음날, 전 세계 신문 1면에는 호스티에 성 붕괴사건의 생존자 라더가, 성 복구비용으로 오백만 유로(한화 약 70억)를 기부했다는 기사가 기재되었고, 화들짝 놀라 달려온 두 사람은 라더의 진중한 제의에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7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셋은 다시 호스티에 성 종탑에 모였다.

이 순간에 오기까지 그들에게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다키아나 한국이나 어디서나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폰을 들이대는 기자들에 진저리 치는 것은 일상이었다. 게다가 이번 일에 영향을 받은 것은 세계적인 기업인 명성리조트도 마찬가지인지라, 파투난 프로젝트의 적자를 메꾸고 최고 경영자 자리를 꿰차기 위한 사내 정치싸움에 그들을 이용하려는 온갖 수작에서 후다닥 빠져나오는 것도 일이었다.

그러나 본래 생판 남이었던 셋은 일련의 사건을 통해 꽤 깊은 유대를 나눈 참이었다. 라더와 덕개는 끔찍한

시간 속에서 거침없이 나아가는 잠뜰의 행동력에 존경을 가지고 있었다. 잠뜰과 라더는 그 밤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신에게 닥쳐온 공포를 재치 있고 넉살좋게 흩어내는 덕개의 정신력에 감탄했다. 덕개와 잠뜰은 언제 자신에게 그런 일이 닥칠지 알 수 없음에도 한결같이 타인을 걱정하는 라더의 마음씨에 위안 받았다.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뛰어난 점을 돋구는 덕택에 그들은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호스티에 성을

재건하고, 이를 배경으로 한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 ⌜뱀파이어⌟의 개봉 1주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정신적인 후유증으로 스스로 제 주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던 잠뜰은 그동안의 노하우가 거짓이 아니라는 듯이

새로운 장르에서도 빛을 발했다. SNS를 통한 홍보를 도맡다가 어쩌다 영화에 미하이 호스티에 역으로 참가하게 된 덕개는 작년 말, 영화제에서 신인배우상을 받았다. 남은 레이몬드의 유산을 모두 영화 제작에 쏟아 부은 라더는 이제 대작의 원작 에세이 작가로서 돈으로 돈을 번다는 게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은 성 아랫마을을 내려 보았다. 하나 둘씩 가로등이 밝아질수록 관광객들과 그들을 맞이하는 현지인들의

말소리가 시끌벅적하게 달아올랐다. 이제는 저 모든 사람들이 성을 이루는 돌들마다의 사연을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의 질투와 아욕은 멈춤이 없어 기어코 하늘에서 검정만을 남겼고

처참하게 쓰러진 별은 곧 그 숨을 다했노라.

그러나 별은 죽어 빛을 남기고, 빛은 사람보다 느리지 않으니.

"선함을 잃지 않은 호스티에를 위하여!'

"⌜뱀파이어⌟의 성공을 축하하며!"

"레이몬드씨를 기리며."

들어올린 세 잔의 검푸른 와인 위에서 별이 아스라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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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에 - 나유��님.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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