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나, 누나! 오늘 밤에 별똥별이 엄-청! 많이 떨어진대!”
팔을 쭉 뻗어 크게 둥근 원을 그려낸 덕개는 헤실헤실 웃음을 터뜨렸다. 주위까지 반짝반짝 빛난다는 착각을
들게 만든 덕개는 작은 손으로 내 주황색 한복 치마를 붙잡고는 흔들었다.
‘별똥별 그게 뭐가 대수라고.’
천년을 넘게 살아온 구미호인 내게는 그저 가끔가다 일어나는, 딱히 크게 일상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천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긋지긋하게 보아왔으니. 덕개는 입을 삐죽 내밀고는 고개를 올려 나를 바라보았다.
“‥별똥별 보러 가자고?”
내 물음에 열심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인 덕개는 끊임없이 애처로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어쩌다 이 꼬맹이를 알게 되어서. 애초에 내가 여우 구슬을 잃어버리지만
않았어도!
“그래, 가자 가!”
애처로운 눈길을 이기지 못한 나는 결국, 승낙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덕개는 내 대답을 듣더니 활짝 웃었다.
“혹시….”
“응? 누나? 왜?”
나는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고민했다. 한 번도, 단 한 번도, 별똥별을 본 적이 없냐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끝내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저 아이가, 별똥별을 보지 못했다는 대답을 내놓는다면. 분명 풀이 죽은 강아지처럼 시무룩하게 대답하겠지.
나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별거 아닌 말이었다고, 나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몸을 반대로 돌렸다. 멀뚱멀뚱 서 있었지만, 입가에 기쁜 미소를 애써 숨기려고 노력하는 덕개를 향해 “오늘 밤에 보자.”라고 중얼거리고는 나는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디뎠다.
오늘 밤에는 비가 내리지 않기를. 부디 이 맑은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한 이 하늘이 마치
저 아이의 순수함처럼, 특히 오늘 밤만큼은 맑고 깨끗하기를 바랐다.
덕개가 인생을 살아가며 별똥별을 볼 날은 아직 많이 남았겠지만, 추억을 하나씩 쌓아갈 때마다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건 내용이 같다 하더라도, 또 다른 하나의 추억일 테니까.
새롭게 쌓아가는 덕개의 수많은 추억 중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기억에 남았으면 하는 욕심에서 온 나의
바람이었다. 나는 곧 여우 구슬을 되찾고 덕개의 곁을 떠날 거니까.
.
“와아-!”
어두운 밤 하늘을 밝게 빛내는, 짙은 하늘에 촘촘히 수놓은 것만 같은 아름다운 별들이 밤하늘 위에서
은은하게, 때로는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덕개는 그런 하늘을 바라보며 탄성을 내뱉었다. 매번 보는 하늘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나도 무언가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등불을 내려놓고는 푹신한 잔디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내 볼을 간지럽혔다.
나는 싱긋 웃으며 간지러워하다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는 덕개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처음 만난 그날에 너는 아끼던 친구가 네 곁을 떠나서 울고 있었고, 두 번째 만났을 때는 무작정 여우 구슬을 내놓으라는 나의 외침에 겁을 먹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관계는. 더 이상 두려움이 공존하는 관계도, 슬픔이 공존하는 관계도 아니다.
우리 둘의 사이에는 행복과 약간의 아쉬움이 남아있는 게 아닐까. 서로에게 빛만이 남아있는 행복한 관계.
그러나 언제 내가 네 곁을 떠날지 모른다는 아쉬움과 불안함.
“어? 어어!”
덕개는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나는 그 외침에 하늘을 올려다 보았고,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별이 빠르게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이 마치 비가 내리는 것도 같아 보였다.
“누나! 방금 봤어? 봤어?”
호들갑을 떨며 내게 달려온 덕개는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물었다. 호흡이 빨라진 것을 보아 별똥별을
보아 신난 모양이었다. 나는 덕개의 물음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네게는 신기한 일일지 몰라도 내게는 그저 별이 떨어지는 거로밖에 보이지 않는단다. 그저 내 일상에서 가끔가다 있는, 평소보다는 조금 특별한 그런 날 말이야.
“별똥별이라는 게 저런 거였구나! 나 처음 봐! 진짜 신기해!”
덕개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게 밝은 모습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억지웃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괜찮다고 겉으로만 보이게 만드는 그러나 전혀 괜찮지 않은.
나는 그런 덕개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작게 내쉬고는 덕개의 작은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처음이면 뭐 어때. 앞으로 더 많이 추억을 쌓아가면 되는 거 아니겠어?”
덕개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진심이 잔뜩 담겨있는 따뜻한 미소였다. 나는 그런 덕개를 바라보다가, 나의 옆자리를 내 손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그만 돌아다니고 앉아서 구경해.”
누워도 괜찮겠다. 하고 나는 덧붙였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덕개는 내 옆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 덕개를 따라 나 또한 풀썩 뒤로 누웠다.
어두컴컴한 밤하늘에 새겨진 반짝이는 별들이 두 눈동자에 다 담지 못할 정도로 셀 수 없이 많았다.
또다시 떨어지는 별을 바라보다가, 내 머릿속에 문득 스치고 지나간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 인생에서
들었던 흥미로운 이야기, 그리고 아마 덕개도 분명 좋아할 만한 이야기가.
“내가 옛날이야기 하나 해줄까?”
“옛날이야기? 응! 난 좋아!”
나는 천천히 숨을 후, 내뱉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나는 머리를 굴렸다. 내가 그러는
동안에도 별이 떨어졌는지 우와, 하는 탄성 소리가 왼쪽에서 들려왔다.
“옛날에는 별들의 주인이 있었대. 그리고 그런 별들의 주인을, ‘별의 아이’라 불렀어.”
“별의 아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의 아이. 머리카락마저 은하수처럼 아름다운 색을 갖고 있었고 하늘에 존재하는
수많은 별처럼 거대한 힘을 지녔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별들의 주인.
“응. 별의 세계에는 별자리들이 있었고 별자리 우물에서는 예언을 내뱉었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 인간 세상에 살고 있었는데, 별자리 우물에서 내뱉은 예언은 다름 아닌 사라진 별의 아이가 인간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었어.”
“인간 세상? 그럼 저 하늘 위에는 별의 세계가 있는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괴들이 사는 세계도 있다면 분명 별의 세계도 있으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극히 평범했던 한 아이의 앞에 밤하늘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만 같은 털과 밝은 푸른색 눈을 가진 고양이가
찾아왔고, 그 고양이는 별의 아이의 파수꾼이었다. 별의 아이는 인간이었기에 별의 아이 시절의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고, 별자리 신들은 별의 아이에게 자신들의 힘을 주었다.
“실제로 별의 세계가 있다면 가보고 싶어.”
덕개는 그렇게 말했다. 별의 세계라. 만약 별의 세계가 있다면 그곳은 어떻게 생겼을까? 문득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몽환적인 곳일까, 저 빛나는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곳일까.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닌 그저 어두컴컴한 곳일까.
“네가 생각하는 별의 세계는 어떤 곳이야?”
“내가 생각하는 별의 세계?”
덕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고, 이윽고 덕개의 목소리가 풀벌레가 우는 소리만으로 가득했던 이곳에 울려 퍼졌다.
“아름다운 곳!”
“아름다운 곳···.”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나는 조용히 얼굴에 미소를 띠고 조곤조곤하게 울려 퍼지는 덕개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밤하늘이 온 세상에 퍼져있을테니, 아름다운 곳 아닐까?”
덕개는 그렇게 말했다. 분명 아름답게 빛나는 밤하늘이 주위에 퍼져 있을 테니 아름다울 것이라고.
찬란하게 빛나는 별들과 함께하므로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나날들은 분명 행복할 것이라고.
“그리고 누나는 내게 별과 같은 존재야.”
너무나 찬란하게 빛나서 내 곁에 있어도 되는 건가, 하고 걱정까지 드는 그런 사람. 누나는 내게 그런
존재이기에 나는 누나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그렇게 말한 덕개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는 헤헤 웃음을 터뜨렸다. 순진하고 귀여운 웃음에 나는 덕개의 밝은 갈색 머리카락을 헝클어 놓았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의 감촉이 손가락 사이사이를 스치고
지나간다.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나는 덕개의 머리 위에서 손을 치우고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은 여전히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까슬까슬한 잔디와 차갑지만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며 나는 입을 열었다.
내가 덕개에게 별과 같은 존재라는, 덕개의 말에 가슴이 몽글몽글해졌다.
“별의 아이는 자신의 기억을 보았지만, 기억해내지 못했어. 별의 아이가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는 별의 조각이
필요했었지.”
별의 아이는 별의 조각을 찾아냈단다. 그리고, 그 별의 조각과 함께 별의 아이는 기억을 되찾았지. 서로 싸우고 있는 파수꾼들 앞에 나타나 자신의 기억이 돌아왔음을 알렸다.
그리고, 별의 아이를 노렸던 사람은 장로였으며, 별의 아이는 자신의 힘과 권력을 탐한 장로에게 경고한다. 또한, 별의 아이는 인간 시절 자신과 함께 지냈던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네며, 그들의 곁을 떠나 새로운 자리에 자리 잡을 준비를 끝낸다.
장로는 별의 아이를 마지막으로 설득하려 하지만. 별의 아이는 자신을 따르던 별자리 신들을 흡수하여
힘을 키우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파수꾼까지도.
“자신을 믿냐는 별의 아이의 물음에 파수꾼은 그렇다고 답했어. 그리고 파수꾼은 당신의 의견을 따르겠다며
별의 아이에게 흡수되었지.”
“흡수··?”
“그래. 말 그대로 흡수. 별의 아이는 더 이상 별의 아이가 아니었어. 블랙홀이 되어 별자리계를 집어삼킬 수 있는 위험한 존재였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가장 내 눈앞에 가장 잘 보이던 큰 별이 떨어져 내렸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별의 아이의 끝은 별의 아이에게는 배드엔딩. 별의 위치에서는 변하지 않는 해피엔딩이란다.
그거 알아 덕개야? 별들은 죽음을 맞이해. 그게 바로 우리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별똥별이라는 거고.
우리는 지금 별의 죽음과 탄생을 함께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별들은 죽으면 새로운 별을 남기고 떠난대.
“별의 아이는 그럼… 새로운 별의 아이를 남기고 떠났을까?”
나의 질문에 덕개는 물끄러미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덕개는 몸을 일으켰고, 혹시나 덕개가 잘못될까,
걱정을 안은 나도 몸을 일으켜 잔디 위에 앉았다. 그 순간 바람이 쏴- 불어왔다. 서늘한 바람에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덕개는 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또다시 바람이 우리 곁을 맴돌다 사라졌다.
“음··· 응. 나는 그랬으면 좋겠어! 나는, 별의 아이가 새로운 별의 아이를 남기고 떠났으면 좋겠어.
그렇지만, 다음 별의 아이는 그 전의 별의 아이와 같은 짓을 하지는 않겠지. 조금 더 조심스러워지고
조금 더 노력하며 좋은 별의 아이가 되기 위해, 더 나아질 세상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그럴까?”
사실 나도 이 이야기의 끝은 알지 못해. 하지만 내가 들은 이야기는 여기까지. 어쩌면 내게 이 이야기를 알려준 이는 열린 결말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내가 네게 묻는 것처럼 말이야.
네가 생각하는 이 이야기의 결말은 배드보다는 해피에 가까운 결말이구나. 대부분의 사람이 원하는 그런 행복한 결말. 아이의 순수함은 너무나 소중해서 자칫하면 깨트릴까 겁나. 마치 유리구슬 같은 그런 아이의 순수함을 깨트릴까 봐. 덕개는 아이였다. 아이의 순수함에서 나온, 자신만의 결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응?”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내 얼굴에 약간의 슬픔이 서렸다 사라졌다는 것을 덕개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
“기억은 확실하지 않지만, 나의 어릴 적 친구였던 누나. 지금 누나는 어디서 뭘 하고 있어? 나와 함께 추억을 쌓아 나가던 그리운 누나는, 지금 어디에 있어?”
여우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옛날 어린 시절이 그리웠다.
“안녕.”
푸른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내 등 뒤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내 눈에는 내 앞에 서 있는 이 사람만이 들어왔다. 갈색 머리와 회색 눈. 그리고 머리에 쓴 화관.
“····누나?”
“오랜만이네.”
나 있잖아. 그날 이후로 누나 못 봤는데, 그리고 잊어버렸는데. 꼭 다시 만나면 하고 싶던 말이 있어.
있잖아. 어릴 적 누나가 내게 해준 말이 있잖아. 처음이면 뭐 어떻냐고, 다시 추억을 쌓아가면 되는 거라고. 그렇게 내게 말 해줬잖아. 누나, 그럼. 지금 누나에 대한 기억을 지금까지 잊고 살아왔던 나로서는 지금 누나와 만나는 게 처음이나 다름없어. 그러니까 누나 우리 다시 추억을 하나씩 쌓아가자.
이번에는 절대 잊지 않도록, 좋은, 행복한,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함께하는 추억을 쌓아나가자.
정말 그리웠어. 내 어린 시절의 한 부분을 담당해준 누나가. 누나가 떠나고 지금까지 누나 없는 이야기를 써 왔지만, 이제는 누나가 우리 곁에 함께하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자.
내 기억 속에서 누나가 사라진 그날처럼, 또다시 비가 옅게 내리기 시작했다. 여우비였다. 여우비는 여우의 눈물이라던가.
“여우비네?”
“…누나, 그거 알아? 여우비는 여우의 눈물이래. 눈물이 참 예쁘게도 내려….”
내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누나는 나를 바라보며 생긋 미소를
지었다. 잠뜰 누나의 얼굴에 활짝 핀 꽃과도 같은 미소가 걸렸다.
안녕 누나. 우리가 헤어졌던 그때와 같은 날 만나게 되어서 반가워. 이별이라는 슬픈 기억 위에 재회라는
즐거운 추억을 덧씌우게 되어서, 나는····· 나는, 정말로 행복해.




" 나는······ 나는, 정말로 행복해. "


W. 레티아 | I. 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