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다시 갈 길을 좇는다. 아니지, 쫓는다. "


W. 해태용 | I. 이루다




...오랜만이다. 밖으로 나온 건. 뭐라고 해야 하나, 라고 묻는다면
난 지금 약 5년만에 밖에 나왔다. 그 이유는 나중에 설명하고.
하늘부터 5년 전과는 많이 달랐다. 하늘의 색은 하늘색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지금은 우주와 비슷해진 회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면서도 지금 나온 나에게는 그게 그거다 싶은 변화였다.
진정으로 변화한 것은 나였다. 전의 몰골과는 다르게 초췌해진 모습.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지금은 5년, 그러니까 반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변했던 건가. 나는 조금 옷매무새와 머리칼을 정리하곤, 앞으로 한 발 내딛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은 대략 비슷하다. 그러니까 내가 집에서만 살기 시작한지 5년 되었으니, 5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때라면 내가 아직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거였나? 아무튼, 그때 세계는 비상사태였다.
갑작스럽게 이산화탄소, 일산화탄소가 땅 위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농도가 짙어져만 가고, 사람들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죽어가기 시작하자,
결국 정부는 국민 모두를 집 안으로 대피시켰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뭐, 웃기지만 그 사태는 1년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겁들로 인해 우린 그 이후로도 4년 동안이나 집 안에만 갇혀있던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발을 내딛어 걷기 시작했다. 문 앞을 나왔다가 문득
쨍쨍한 해를 보고 싶어서 문득 머릿속으로 해를 그려본다.
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긴 하다. 그래도 머릿속으로 그려본 해는.
더 이상은 볼 수 없는 해였다. 그럼에도 내 손을 쳐다보며 다시 상상해본다.
이게 정말 사람인가? 그렇다면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 맞는 건가?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며,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배워야 한다며.
결국 다시 상상을 멈추고 앞을 본다. 정말로 이게 내가 가고 싶은 길이 맞긴 한 걸까.
그럼에도 난 갈 길이 없어 나아간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누워있다. 물론 살아있는 건 아니겠지. 신경 끄고 갈 길을 간다. 저 너머에서 사람이 보인다. 사람인걸까? 내가 그저 착각하는 건
아닌가? 그럼에도 난 나아간다. 물론 사람을 만날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식량이 없어 죽은 사람만 몇 명인데. 저게 과연 사람일까.
잠시 멈췄다. 그쪽도 잠시 멈춘다. 같이 멈췄다는 건, 저건 사람.
나는 앞으로 달려 나가 그 실체를 확인하러 간다. 어차피 이제 사람들은 다 사라졌는데
저게 사람이든 날 잡으려는 괴물이든 그게 무슨 상관인지.
달려가선 그 무언가에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그게 나를 덮치기나 할까? 혹은 무엇인가 물어보기라도 할까?
정답은 무엇인가 물어보는 것이었다. 사람이라 보기 힘든 무언가가 나에게 길을 물어본다.
나는 친히 모른다고 대답해준다. 그 사람은 약간은 시무룩한 얼굴로 떠나간다.
그 무언가가 누워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 무언가가 죽어버리니 이 세상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초록빛의, 하늘색의, 모든 게 돌아왔다. 그게 정말 이 사건에 관련 있는 걸까?
이 사건의 범인이었던 건가? 나는 그 무언가에게 다가간다.
그 무언가는 정말 싸늘하게 식어 있다. 식은땀을 닦아내고, 그 손을 만진다.
매우 차갑다. 그런데 머리 위로 가면과 모자들로 꽁꽁 싸매였다.
뭐지? 난 그것들을 모두 벗겨내고 이 무언가의 정체를 보게 된다.
이 사건의 원흉. 이 모든 것들의 원인. 나는 그의 옷에 있는 이름표를 본다.
서한솔. ...어? 나는 머리에 강한 통증을 받고 쓰러졌다.
나는 잠에서 깨어난다. 컴퓨터가 내 머리맡에 있다. 하...
이제 곧 완성되는데. 이제 곧 끝나 가는데. 근데 자고 있다니.
껌 하나를 씹으면서 컴퓨터 화면을 쳐다본다.
90%... 10%만 더 있으면 되니까 정신 차려. 그러면서도 컴퓨터 화면에 눈을 때지 않는다.
이제 겨우 91%가 됐을 뿐이야. 껌에서 나는 단맛이 사라지자.
그때야 컴퓨터 화면에 시선을 떼고 껌 한 개를 꺼낸다. 그리곤 생각한다.
이게 마지막이야. 마지막 단 하나의 기적, 아니지. 절망. 이것은 단 하나의 절망이다.
그러니까. 이 세계는 이 프로그램이 완성되면 끝난다. 나 한 명을 제외하고.
...그랬던 건가. 나는 다시 갈 길을 좇는다. 아니지, 쫓는다.
초록빛 땅과 하늘색 하늘은 더 이상 의미 없다.
내가 왜 그랬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건 내가 만든 디스토피아. 절망의 구렁텅이.
그리고, 혼자밖에 남지 않은 세계다. 진실된 디스토피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