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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맞다.

어떤 사람은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줄곧 그렇게 믿어왔다. 기대에 대한 보상이 있을지 또한 미지수이며,

보상은커녕 실망감만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

 

" 박덕개 순경, 앞으로."

" 축하해, 덕개야."

" 네! 알겠습니다!"

 

나는 긴장되지만 당찬 발걸음으로 단상 위에 섰다. 단상 밑으로 박수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린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 선망하거나 질투하는 시선, 그리고 저가 다 뿌듯하다는 듯한 시선까지. 갖가지 시선을 누리며 서장님 앞에 섰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날이다. 오늘부로 어엿한 경장이 된 것이다. 취객을 돌려보내기나 초동수사 보고서 작성 등 피곤한 잡무 말고! 이제 본격적으로 수사에 참여하는! 그런 경찰이 되었다는 말이다.

나는 약간은 경직된 자세로 임명장을 받고 경례를 했다. 꿈에 한 발짝 가까워진 기분,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마음의 병에 꾹꾹 눌러 담아 마음속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해놓는다. 아마 오늘의 감정은 몇 십 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임명장을 받고 내려오려는 찰나, 오색찬란한 빛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재빨리 손을 들어 비명이 새어

나오는 입을 막았다. 아 그래, 너희들이 있었지.

 

'축하해, 덕개야. 앞으로 탄탄대로가 펼쳐질 거라는 느낌이 들어.'

'행복해! 기분 좋아!'

'이 감정을 잘 기억해두세요. 앞으로도 이 감정을 잃지 않길 바랍니다.'

'옛날에 고향에서 네게 충고를 해주었던 영혼이 생각나는구나. 그 덕에 네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겠지.

그대가 참으로 대견스럽구나.'

 

갑작스러운 소리 때문인지 한껏 긴장되어있던 근육이 놀라 다리에 힘이 탁 풀렸다. 옆에 있던 핸드레일을

붙잡은 덕에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주저앉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능력. 내가 날카로운 통찰을 하게 해주고 숨어있는 단서를 찾게 해주는 아이들이다.

뭐, 한낱 순경이 무슨 특별한 걸 할 수 있겠냐마는. 하지만 미래에는 내가 수사에 도움을 줄 수 있겠지.

아무튼 이들은 경찰 생활을 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을 주었지만 동시에 큰 불편함을 안겨다 주었다. 갑자기

말을 걸어 나를 놀라게 하는 건 기본이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필사적으로 이를 숨겨야 하는 것도 큰 불편함 중 하나였다. 물론 '내 능력인데 내가 조절할 수 없나...' 라는 생각도 안 해본 건 아니다. 감각들과 소통을

시도하며 노력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컨트롤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이미 접은 지 오래다.

컨트롤할 수 있었으면 진작 했겠지. 그럼 아까 같은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고. 음, 다른 사람에게 모두

털어놓으면 이런 불편함이 조금 나아질까 했지만, 금방 포기했다. 이 능력은 초능력에 가깝기에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믿기 힘든 힘임을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해봤자 나만 이상한 사람 취급당할 거라는 것도 알고.

어떻게 아냐고? 나도 알고 싶지는 않았다.

--

 

할머니는 내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다는 사실을 아신 뒤로 나에게 항상 당부하시던 것이 있었다.

 

"최대한, 최대한 다른 사람들에게 네 능력을 알리지 말아라... 아이고 , 우리 아가..."

 

하지만 철부지 어린 시절에 나는 할머니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영혼을 본다던가, 더 나아가 대화를 한다던가... 그런 '기이한' 일은 그 당시의 어린 나에게는 일상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물론 머리가 크면서 내가 특이한 사람인 걸 깨닫기는 했지만, 남에게 말하지 못할 비밀을 오랫동안 안고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더라. 사람이라면, 무엇이든 간에 무작정 참고만 있으면 언젠가는

터지게 되어 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나 보다. 십몇 년 동안 혼자서 숨기고만 살아서, 누군가가 날 이해해주고 그동안 고생

했겠다며 위로해주길 바랐나 보다. 하하, 정말 터무니없는 기대였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나마 평범해 보이는 삶을 살았다. 뭐, 친구들 앞에서는 영혼들이 놀라게 할 때마다 비명을 참는 게 고역이긴 했지만. 그 노력 덕인지 친구도 꽤 많이 사귀었고 주변 평판도 괜찮았다.

그날은 조금 추운 겨울날이었다. 시험이 끝난 기념으로 친구들과 영화관에 가 오랜만에 영화를 보기로 했던

날이기도 했다. 하필이면 공포 영화를 봤는데...영혼들이, 특히 예민이와 직감이가 무섭다고 떠들어댔다.

점잖아서 안심했던 통찰이는 스포일러를 하고 앉았다.

 

'아니 애들아...감상이든 추리든 제발 꺼져주면 안 될까... 아오. 가뜩이나 겁도 많은데!'

 

그렇게 마음속으로 신세 한탄을 하고 있었을 무렵, 갑자기 스크린에 귀신이 비명을 지르는 등장인물과

함께 등장했다.

 

""꺄악-!""

 

나를 비롯한 상영관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놀랐다. 하지만 두 번 놀란 사람은 나밖에 없겠지. 곧 갑툭튀가

있을 거라고 예상을 한 영혼들이 갑자기 시끄럽게 얘기하는 바람에 '악!' 하는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고,

가라앉힐 새도 없이 스크린에 튀어나온 귀신 때문에 두 번 놀라 팝콘을 엎었다. 지금에서야 말하는 거지만

다들 비명을 질렀으니 망정이지, 그 조용한 상영관에서 혼자 비명을 질렀을 상상을 하니...으, 끔찍하다.

영화가 끝난 뒤 불이 켜지고, 사람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바닥에 쏟아져 있는 팝콘을 아련하게 쳐다보곤 영화관을 나왔다. 나오자마자 친구들이 박장대소를 하며

팝콘을 쏟은 나를 놀려댔다. 한바탕 놀림이 끝나고 우리는 슬슬 헤어지기로 했다. 집이 나와 같은 방향이었던 애는 그 무리에서 나랑 가장 친하던 녀석이었는데, 꽤 마음이 통하고 의지했던 친구다. 그렇게 둘이 집에 가던

중에 그 애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야 근데 개웃긴 게,"

"엉."

"넌 뭐 귀신 나오기 전에 놀라냐. 흐흐, 오구구 분위기가 무서웠쪄?"

"악! 뭐야, 네가 어떻게 알아."

"내가 니 옆좌석이었잖아. 또 귀신 나오니깐 바로 팝콘 엎드만. 뭐, 진짜 귀신이라도 봤냐."

 

왜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냥 그때는 말하고 싶었다. 왠지 걔한테는 말해도 될 거 같았다. 기대...했었다.

 

"허허, 진짠데."

"엥..?"

" 귀신 본다고, 나."

 

그때, 네 표정이 어땠더라. 잠깐 놀라 얼굴이 굳었긴 했지만 바로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왔었지, 그래.

 

"...하하하! 야, 너 연기 동아리 들어가더니 연기 진짜 많이 늘었다. 순간 진짠 줄."

".....헤헤, 티 났냐."

"그래 인마! 네가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이 형님은 못 속인다 이거야~"

"오~ 개소ㄹ, 악! 아파! 왜 때리는데!"

"나 속이려 한 복수! 나간다!"

"...어."

 

결과는 보시다시피, 음, 아예 믿어주지도 않고 무시당해 버렸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그때는 왜 그렇게

상심이 컸는지 모르겠다. 그때 뒤로... 사이가 조금 소원해졌지. 걔가 아니라 내가 거리를 뒀다. 지금 찬찬히

생각해 보니 그 애한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유도 모른 채로 친구가 점점 자신과 멀어져가는 걸 느끼게

했으니까. 나름대로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멋대로 건 기대가 깨지니 다시 마음의 문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

 

그 이후로 기대는 못 걸겠더라. 경찰시험에 합격하고, 못 미덥지만 그래도 좋은 사수를 만난 후에도,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터놓고 얘기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이 영혼들을 싫어한다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다.

두루뭉술하게 말하고! 갑작스레 튀어나오고! 제 말만 하고 사라지지만! 이것과는 별개로, 이들이 있어 현재의

내가 있기에, 차마 원망하거나 미워할 수 없었다.

 

"..ㄷ...장!"

 

근데 내 말은 좀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덕경장!!"

"아! 죄송합니다! 어 뭐야, 공선배였어요?"

"뭐냐 그 반응은. 무슨 생각을 하길래 부르는데도 못 들어~ 인수인계 후딱 하고 오리 불고기나 먹으러 가자.

곧 점심시간임."

"아...인수인계 너무 귀찮다."

"오, 경장 단지 하루도 안 됐는데 벌써 땡땡이치고 싶어 하는 거야? 나야 환영이지, 가보자고~"

"아니 무슨 말이 그렇게 돼요!!"

 

선배와 가볍게 실랑이를 하고 내 자리로 돌아가 인수인계 문서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문서 처리가 거의 다

끝나갈 무렵, 어떤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혹시... 덕개경장, 맞나요?"

 

나를 찾는 듯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더니 처음 보는 여성 한 분이 계셨다.

깔끔하게 올려 묶은 머리, 꼿꼿하게 핀 허리에 흐트러짐 없는 정복. 게다가 카리스마 넘치는 분위기를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말 안 해도'어느 정도 지위 있는 사람이구나'를 알 수 있을 정도로. 근데 이런 분이 갑자기 나를 왜 찾으시는 거지?

 

"아, 네! 제가 덕개경장입니다! 근데 죄송하지만, 인수인계 문서가 남아있어서 잠깐만 기다려 주실래요?"

"그~ 오늘 진급한 덕개경장이 맞기는 한다는 거죠?"

" 네, 맞습니다만... 처음 뵙는 분이신데... 누구시더라, 정말 죄송한데 누구세요오오악-!"

 

'이 얼굴을 마음속에 잘 새겨두거라.'

'그 정도로 당신의 인생을 크게 바꿀 인물입니다.'

'잘 생각해. 덕개 너도 알고 있잖아 저 사람은...'

'미지의 현장으로 당신을 이끄시고...'

'너 역시도 저자의 인생에 큰 축이 될 것을 말이다.'

 

그녀와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려 하자마자 세상이 오색찬란하게 변하며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이 보였다.

무방비 상태였던 나는 나오는 비명을 미처 막지 못했고, 상대방은 꽤 놀란 듯 했다.

 

"왜 그러세요? 뭐야, 귀신이라도 봤나? 괜찮으세요?"

"아, 아니, 아닙니다..."

 

아 낭패다. 머리가 어지러운 건 둘째치고,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이러다니. 보아하니 여기에 새로 발령나신 거 같은데... 아이고, 이제 이상한 애 취급당하겠네... 제발 얘들아, 내 체면 좀 살려주지 않으련? 수습은 또

어떻게 해야 하냐...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에 있는 파일을 한 장씩 펄럭거리며 나에게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럼 다행이고. 인수인계 때려치우고 나 따라와요. 당신 스카웃 됐습니다."

"예...?

 

지금 이건 무슨 상황인 걸까. 대뜸 스카웃이라니. 하지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와, 겁나 멋있으시다...'

 

였다. 나를 서류철 지옥에서 구해주셨다는 이유도 있지만, 자신의 얼굴을 보고 냅다 비명을 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추궁하거나 하지 않으시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어가 주셨다. 경위님은 다른 사람들도 데려와야

하니 로비에서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씀을 남기고는 가셨다. 혼자 로비에 앉아 기다리면서 아까 영혼들이

한 말을 곱씹었다.

대충 정리하자면 나는 예전에 어딘가에서 경위님을 뵌 적이 있는데 심지어 저분이 앞으로의 나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줄 인물이라는 거다. 일단 먼저, 내가 저분을 처음 뵙는 게 아니라고? 대체 어디서...아, 설마.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순경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TV에서 생소한 프로파일링 기술로

살인사건을 해결한 경찰 한 명을 인터뷰하는 걸 본적이 있다. 자신의 능력에 자부심을 가지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아까 경위님을 만났을 때와 똑같은 감상을 남겼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저런 분 같은 경찰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지...

따지자면 롤모델 아닌 롤모델인 셈이다. 예사롭지 않다 했더니 역시 대단하신 분이셨구나. 그런 사람을 내가

만났다고? 그것도 모자라 같이 수사를 한다고?? 뒤늦게 흥분이 되기 시작했다. 근데 그건 그렇고...

나의 인생을 바꿀 인물, 이라. 통찰이와 과거가 한 말이니 그나마 신뢰는 가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뭐, 애들 말이 항상 맞는 것도 아니니깐. 유명한 사람이라 그런 건가? 허 참, 주책이라니까.

.

.

.

 

드디어 모든 팀원이 모였다. 오가면서 다들 한 번씩은 본 얼굴들이었기에 자기소개는 생략했다. 근데 공선배도 있네. 음,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다행인 일이겠지. 그나마 친한 사람이니까.

수사를 위해 다들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현장으로 이동했다. 경장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뛰어드는 사건이다. 설렘과 긴장으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차에 탔다.

 

"으..."

 

현장에 있는 시신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얼굴과 몸이 불로 인해 심한 화상을 입어 신원 확인이 어려웠다.

시체를 보자마자 피해자에게 죄송하지만 토기가 올라왔다. 안색이 점점 안 좋아지는 나를 보며 각경사님이

말했다.

 

"너무 힘들면 나가. 무리하지 말고."

"아... 아뇨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뭘 괜찮아. 안색 창백해졌구먼. 훠이훠이, 나가서 바람이나 쐬라."

"ㄱ, 그럼 밖에서 보고만 있을게요...! 시각적인 것보다는 냄새가 버티기 힘드네요..."

"그럼 그러던가."

 

평소 교류가 별로 없었던 각경사님이 걱정하실 정도로 내가 안색이 나빴나 보다. -사실 그냥 햇병아리 경장에

대한 배려였다- 솔직히 버티기 힘든 것도 사실이라 엘리베이터 밖에서 선배님들이 수사하시는걸 보고

있었다. 시체와 현장을 간단히 살펴보신 경위님이 나지막이 한마디를 했다.

 

"나 재구성 다녀올게."

"네, 경위님."

 

재구성...? 그게 뭐지? 라경장님은 아시는 거 같은데? 그런 의문이 들자마자 경위님이 사라지셨다. 라경장님을

제외한 모두 다 놀란 듯 했다. 깜짝 놀란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풍기는 악취도 잊고 현장에 뛰어들었다.

 

"가, 갑자기 어디로 가신 거예요...?"

"아, 사건에 너무 집중하셔서 제대로 설명 못 하셨나 보다. 엄... 내가 할 얘기는 아니고, 나중에 경위님한테서 들어.

지금은 그냥 경위님 능력이라고만 알고 있어."

"아... 네."

 

조금 놀랐다. 아니, 정정하겠다. 좀 많이 놀랐다. 여태까지 나와 비슷한 사람은 이 세상에 또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 자신 외에는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없을 거라고 단정 지었었고. 근데... 있었다! 심지어 그 사람이 내 상사라니,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 어쩌면... 정말 어쩌면....

 

'...아니, 의미 없는 기대는 안 하기로 했잖아. 정신 차려, 박덕개.'

 

경위님과 나는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째,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경위님은 갑자기

사라지고 나타나는 것으로 충분히 증명이 가능하지만, 나는 불가능하다. 이 영혼들은 나에게만 보이니까.

그리고 두 번째는... 나는 경위님처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능력을 쓸 용기 자체가 없다. 애초에 '능력을 쓴다'

라는 말에 어폐가 있기는 하지만. 그러니까 이 영혼들이 한 말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출처가 어디인지 불분명한 햇병아리 경장의 말을 믿어줄 가능성이 그렇게 크지 않기도 하고.

그래서 경위님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그와 동시에 의문도 들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당당할 수 있나요, 나도 언젠가는 그럴 수 있을까요.'

 

...끝없는 자기비하의 굴레에 빠지기 전에 나는 스스로 나의 뺨을 챱-하고 때렸다. 기죽지 말자 박덕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박덕개!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경위님이 이미 재구성을 마치고 나타나 계셨다. 다른 분들께 프로파일링 결과를 말씀하시는 거 같은데... 나도 빨리 합류해야지.

피해자의 사인, 현장의 특이점 및 의문점, 마지막으로 수사 진행 방향까지 간단히 브리핑하시는 경위님은

처음에 느꼈던 거 보다 훨씬 더 멋있는 분이셨다. 누구나 꿈에 그리던 '경찰'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경위님의 설명을 끝으로 수사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흩어져 개인적으로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팀으로 활동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능력의 특성상 혼자 다니는 게 더 심적으로 편하기 때문이다. 출동 전에도 이와 관련된 걱정을 했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혼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을 때, 영혼들이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네가 핏기조차 가시지 않은 어릴 적, 너는 이 길을 지난 적이 있었다. 노량대는 걸음... 그 품에 안겨 그루잠을 자던 그 시절의 거리는 이제 남아있지 않구나.'

'보이지, 도시 터널이 궁금하지 않아? 처음 형사로서 하는 미지의 탐험이라고.'

"아, 뭐야뭐야뭐야, 하나만 말해, 하나만..."

 

아 진짜, 사람 놀라게 하는 데에는 선수다. 과거의 말에 따르면... 어릴 때 이곳에 온 적 있다는 말인데.

어쩐지, 묘하게 익숙하더라니. 직감이는 무슨 나보다 신난 것 같다. 도시 터널? 저 앞에 터널이 하나

보이기는 하다. 얘 이거 그냥 잡담인 거 같은데... 그래도 한 번 가볼까? 무언가 있을 것만 같았다. 내 감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역시..."

눈 속에서 반사광을 느껴 그 속을 휘적거리니 작은 귀걸이 하나를 발견했다. 귀걸이... 귀걸이라...

아, 아까 시신 왼쪽 귀가 뚫려 있다고 했었는데 이게 그건가 보다. 그럼 피해자는 여기서 습격을 당했거나

시신을 운반할 때 여기를 지났다던가. 둘 중 하나겠지. 일단 챙겨놓자. 나는 주머니에서 비닐팩 하나를 꺼내

귀걸이를 조심히 넣어놓았다. 그거 외에는 딱히 수사할 게 없어 터널이 있는 골목을 나오는데 경위님을 딱 마주쳤다.

 

"아! 경위님! 제가 터널 쪽에서 뭘 하나 발견했습니다."

"....아, 그래. 뭔가?"

"귀걸이인데요, 시신이 왼쪽 귀에 하고 있던 귀걸이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마 피해자는 여기를 지나다가

피해를 입었거나..."

"시신 유기 때 여길 지난 거겠지. 잘했네! 덕경장."

 

잠경위님이 내 어깨를 탁탁 치며 칭찬을 해주셨다. 괜히 기분이 좋아 실없이 헤헤 웃었다. 그나저나, 아까

터널에 있을 때 인기척이 들려서 살짝 긴장했는데 경위님이셨나보다. 어, 그러면.

혹시 내가 영혼들과 대화하는 것도 보셨나?

 

 

--

"우선 이번 사건은 특별히 같이 일할 동료들도 붙여주도록 하지."

"아, 전 괜찮습니다. 지금까지 저 혼자서도 잘 해왔습니다. 그보다는 금전적인 지원이 더 나을 거 같습니다, 서장님"

"자네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만... 이번 사건은 좀 힘들 거야. 게다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니 웬만한

지원보다는 꽤 쓸만할 거다."

"뭐... 알겠습니다."

 

항상 혼자서 수사를 진행하던 나였지만 이번에는 의도치 않게 팀으로 수사를 하게 되었다. 능력을 쓰기에는

혼자가 더 편한데 말이지. 보는 눈이 많아지면 능력을 사용할 때 귀찮아진다.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지는

기이한 힘이니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이 능력의 존재를 알고 고까워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그 정도야 뭐, 실적으로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면 되니 별 신경은 쓰이지 않는다. 일단, 팀원을 소집해 한시라도 빨리 현장에 이동해야 한다. 이러고 있을 때 사람을 죽인 더러운 범죄자들은 선량한 시민인 척 아직도

거리에서 활개칠테니까. 서장님이 주신 5명의 프로필을 대략 살펴보았다. 한 장 한 장씩 넘겨보다, 마지막 장 마지막 줄에 시선이 꽂혔다.

 

-탁월한 초감각으로 현장에 남아 있는 시체를 통해 영능력 사용 가능

 

영능력? 귀신이 존재한다는 걸 믿지 않는 사람으로서는 다소 황당한 사항이었다. 뭐, 일단 사람을 보면

진짜인지 아닌지 알겠지. 잡념은 저 너머로 일단 던져두고, 나는 팀원들을 찾는 데에 전념했다. 로비에 나와 쭉 훑어보고는 한 사람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첫번째로 만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짧게 몇 마디 주고받으면서 느낀 건 이 사람은 그냥 영락없는 사회초년생이라는 것이다. 딱히 뭐 특이한 건 없는데? 라고

생각하려던 찰나,

 

"으아악-!"

갑자기 그가 비명을 질렀다. 시원하게 지르고는 자기도 꽤 당황했는지 뒤늦게 제 입을 틀어막았다. 퍼뜩

고개를 들은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에 당황과 불안, 그리고... 두려움이 일었다. 당황과 불안함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두려움이라. 괜찮냐는 나의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회피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처음 나의 능력을 깨달았을 때와 흡사하다고. 그래... 프로필이 거짓말은 아니다, 이거구나. 그나저나 나와 비슷한 사람은 라더를 제외하고는 처음인 거 같은데. 설마......!

 

'게다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니 웬만한 지원보다는 꽤 쓸 만할 거다.'

 

이 능력이 그 능력이었나요, 서장님. 아까 라더가 프로필에 껴있는 걸 보고 긴가민가 했었는데 덕경장을

만나고 나니 확신이 들었다.

 

이 팀은 아마, 특수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 모인 팀일 것이다.

.

.

.

"후..."

 

능력을 쓰고 나면 이게 안 좋다. 갑자기 바뀐 공간에 머리는 돌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 그러고 보니

나 설명도 안 하고 갔네. 다들 꽤 놀랐겠구먼. 정신을 차리려 가만히 서 있었는데 저만치에서 혼자 팔짱을 끼고 손톱을 물어뜯는 덕경장이 보였다. 그는 어딘가 씁쓸해 보이는 표정을 하다가 제 양쪽 뺨을 가볍게

치고는 내가 있는 쪽으로 왔다. 정신도 차렸겠다, 팀원들에게서 오는 질문 폭탄을 받을 준비를 했건만

내 능력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 다들 눈치를 챘겠지. 내가 그들과 동류라는 걸.

뭐, 나로서는 똑같은 얘기를 또 안 해도 되니까 잘된 일이지. 나는 입을 열어 프로파일링의 결과를 전했다. 다들 경청을 했고,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간단한 브리핑이 끝나고, 각자 흩어져서 조사하기로 했다. 이곳저곳을 조사하다가 아직 가보지 않았던

도시 터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터널까지 코너 하나만을 남겨뒀을 때 즈음, 코너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아, 뭐야뭐야뭐야, 하나만 말해, 하나만..."

 

이 목소리는, 덕경장이다. 덕경장은 이 말을 시작으로 계속 얘기를 했다. 누구랑 얘기하는 거지? 돌아오는

대답이 없는 것을 보아하니, 혼잣말인 듯한데... 아, 혹시 그 '영능력'인가. 수사하는 동안 다른 팀원들의

능력에 대한 눈치는 어느 정도 챘지만 덕경장의 능력은 아직 갈피를 못 잡겠다. 단순히 영혼과 대화하는 건 아닌 거 같았다. 아까 엘리베이터 현장에서 악취 때문에 유난히 힘들어하던데, 오감과도 관련이 있나.

계속 숨어서 훔쳐 듣는 것도 덕경장에게 예의가 아니니 터널 쪽 길목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나오는 덕경장과 딱 마주쳤다.

덕경장은 나를 보자마자 아까 수집했다던 귀걸이를 보여줬다. 눈 때문에 찾기 힘들었을 텐데 용케도 찾았네.

나는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칭찬을 해주었다. 계속 위축되어 있던 모습만 보다 조금 웃는 걸 보니 그래도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수사를 진행하다, 다미씨의 도움으로 버려진 보육원에 도착하게 됐다.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내 뒤에

있던 덕경장이 흠칫 놀라는 걸 봤다. 덕경장은 그 자리에 굳어 있다가 팀원들에게 떨리는 목소리 말했다.

 

"어... 여기 왠지 들어가면 안 될 거 같은데요...?"

"왜 뭔 소리가 들려 너한테?"

"어...."

 

덕경장의 말에 라경장이 걱정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나 덕경장에게는 난처한 상황이겠지. 그는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걸 꺼리는 거 같았으니까. 뭐, 오지랖 좀 부려볼까.

 

"빨리 조사하지, 무너질 것 같긴 하다."

"아 네!"

 

내 말을 들은 라경장이 재빨리 보육원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뒤쪽에 혼자 남은 덕경장의 한숨이 들렸다.

꽤 곤란한 상황일 거라는 내 추측이 맞았던 모양이다. 능력을 드러내는 걸 어지간히도 두려워하나 보다.

그 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기에, 나는 사건 해결 뒤에 덕경장과 얘기를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

.

"흐하하! 살아있는 윤미영과 서인하를 찾지 못하는 이상, 지금 말하는 것들은 전부 심증뿐 아닙니까?"

 

낭패다. 분하지만 그의 말 중에 틀린 말은 없다. 애초에 윤미영과 서인하를 찾지 못하면 이 추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어떻게, 어디서 찾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그때, 덕경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아무도 없는 하숙집 2층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었어요! 그곳에 숨은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빨리 가보자고!"

 

덕개경장의 오감과 라경장의 괴력 덕에, 윤미영과 서인하는 최성진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로써 사건종결이다.

상부에서는 살인사건을 단숨에 해결한 우리들을 눈여겨보시고 '미스터리 수사반'이라는 이름의 수사팀을 편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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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집 살인 사건을 해결하고 며칠이 지나고, 나는 '경장 박덕개'에서 '미스터리 수사반 소속 박덕개 경장'이 되었다.

이른 아침, 나는 수사반실로 출근을 했다. 내가 생각해도 꽤 이른 시간이라 출근한 건 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팀의 막내보다 팀장이 먼저 도착해 계셨다.

 

"좋은 아침이네, 덕경장."

"네! 좋은 아침입니다, 경위님."

 

경위님은 벌써 컴퓨터 앞에 앉아 오늘 있을 업무를 준비하고 계셨다. 요 며칠 동안 우리는 하숙집 살인사건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무슨 처리해야 할 서류가 이렇게나 많은지... 경위님을 뵌 지 얼마 안 되기는 했지만,

경위님은... 워커홀릭이신 거 같다. 원래 계획은 여유로운 아침을 즐기며 커피 한 잔 마시는 거였는데...

상사가 업무를 하고 있는데 부하가 농땡이 피우는 게 말이 되나.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컴퓨터를 키려던 중, 경위님이 내게 말했다.

 

"덕경장,"

"ㄴ, 네?"

"나랑 얘기 좀 하지 않겠나."

"예에...?"

"물어볼 게 좀 있어서 말이지."

 

하하하. 망했다. 나 뭐 잘못했나? 나 찍힌 건가? 아악, 혹시 능력 관련 얘기인가? 짧은 찰나에 그렇게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갈 수 있구나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내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자 경위님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긴장 풀게, 내가 자네를 잡아먹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냥 얘기하는 거라네. 저스트 토킹."

"하하, 네. 근데 무슨...?"

"자네 능력 관련해서라네."

 

내 이럴 줄 알았다. 요 며칠간 선배님들과 지내면서 알아낸 건 나를 포함한 6명 모두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들 정식으로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소개한 건 아니지만, 저번 살인사건 수사를 통해 대충 어떤 능력인지는

알아낼 수 있었다.

 

"내가 자네들을 소집하기 전에 팀원들의 프로필은 다 한 번씩 봤었다네. 각경사, 수경사, 라경장, 공경장, 그리고

자네까지. 자네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특이사항란에 그들의 능력이 상세히 적혀있었는데, 유난히 덕경장것만

두루뭉술하게 쓰여 있더군. '초감각'과 '영능력'이라고 알고 있는데... 저번 수사 때를 보면 또 그것만은 아닌 거

같아서 말이지. 혹시 얘기해줄 수 있나? 팀장으로서 팀원의 능력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아...."

 

그래, 덕개야, 뭐 어때, 저분도 너와 같은 초능력자시잖아. 왜 말을 못 하는 거니.

 

"음, 생각해보니 나도 제대로 설명을 안 한 거 같군. 저번에도 봤다시피, 나는 사건 현장을 재현해 낼 수 있어.

그 공간에서 피해자의 사인, 상태 등을 조사할 수 있고 또 가해자의 흔적이나 목격자의 여부 등을 알 수 있는

능력이지.  가끔 다른 사람을 내 공간으로 불러 수사 요청을 하니, 때가 되면 너도 볼 수 있을 거야."

"......"

 

이렇게 되면, 빠져나갈 수도 없다. 그때, 그들이 또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여느 때보다 부드럽게, 나를

놀라게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들이 눈에 보였다.

 

'때로는 피하는 것보다 맞서는 게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나쁜 예감은 안 들어. 너무 걱정하지 마, 덕개야.'

'또 상처받을까 무서워... 안 믿을 거야...'

'덕개여, 우리는 그대가 과거에 얽매이는 것이 아닌, 과거를 딛고 성장하기를 바란다. 걱정하지 말아라,

그때의 '실패'는 지금을 위한 디딤돌이자, 그대의 성장에 필요한 양분이었느니라.'

 

나는 두 손에 내 얼굴을 묻었다. 경위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내가 먼저 얘기하는 것을 기다리고 계신다. 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래, 말하자. 영혼들의 말대로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어 있을 수는 없다. ...경위님이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 또 의미 없는 기대를 거는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또 상처받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한 번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나는 경위님께 나의 능력을 낱낱이 알려드렸다. 오감이 평범한 사람보다는 몇 배는 예민한 것부터 해서,

내 주위를 맴도는 영혼들의 이야기까지 모조리. 나의 얘기를 들은 경위님은 얼굴이 약간 굳어있었다. 나는 황급히

한 마디를 덧붙였다.

 

"믿기 힘드시죠? 이해해요. 저는 이 능력을 증명할 도리가 없으니까요. 저를 이상한 취급 하셔도 전-"

"누가 자네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나? 그저 생각을 좀 했을 뿐이라네."

"무슨... 생각을 말이에요?"

"모든 자물쇠를 풀 수 있고, 말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단숨에 수화를 터득하고, 맨몸으로 벽을 미는 게

물론 정상인의 범주는 뛰어넘었지만, 초능력이라기에는 애매하지. 하지만 자네는... 초능력이라는 단어 외에는

딱히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러니 이해받는 것도 어려우리라 생각했겠지. 언제부터인가 인간관계에서

기대를 하지 않게 됐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완전히 여는 것도 힘들어졌을 거야. 자신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니까. ...이해해. 이해한다는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지만, 내가 겪어봤기에 할 수 있다. 그동안 혼자 견디느라 힘들었겠지, 안 그런가?"

"......."

"수고했네, 여태까지. 아 그리고, 자네 같은 인재가 내 팀으로 와서 정말 다행이야."

"...하"

"덕경장만 괜찮다면 이제부터 내가 아니, 미스터리 수사반이 네 곁에 있어 주겠네."

 

아, 진짜 이분은 사람 울리는데 도가 트신 분이다. 가슴이 울렁거린다. 울컥-하고 뜨거운 것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온다. 울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빨리... 무슨 말이든 해야 하는데...

경위님은 내가 여태껏 듣고 싶었던 위로와 격려를 다 해주었다. 정말, 고마운 분이다. 경위님을 처음 만났을 때 왜 영혼들이 '내 인생을 바꿀 인물'이라고 칭했는지 알 것도 같다. 나는 목소리를 쥐어짜네 한 마디를 꺼냈다.

가장 단순하지만, 나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할 말.

 

"감사합니다..."

"오냐. 그리고... 다들 밖에 서 있지만 말고 이제 들어오지 그러나."

"?"

경위님이 쿡쿡 웃으시더니 사무실 문을 향해 얘기하셨다. 곧바로 문이 열리면서 4명의 남성이 머쓱한 얼굴로 들어왔다.

"아니...... 분위기가 장난 없길래 못 들어갔죠;;"

"막내 다 울었어? 눈 빨개진 거 봐."

"전 누님이 덕경장 혼내는 줄 알았습니다."

"아~ 서운하다~ 나랑은 일 년이나 더 오래 알고 지냈는데~"

공선배는 서운한 티를 팍팍 내더니 내 자리로 와 손으로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아! 선배! 머리!!"

"요놈 자식! 맛 좀 봐라!!"

공선배 덕에 가라앉은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활발해졌다. 정말 다정하신 분들이라니까. 앞으로 이들과

함께 하는 날들이 기대된다고 하면...... 헛된 바람이려나. 뭐, 알게 뭐람. 그냥 내가 바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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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는 안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믿어왔다.

하지만... 그럴만한 사람들이라면, 그렇다면... 기대를 걸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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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율 | I. Pu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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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는 안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믿어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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